백석 예수 생명 공동체 <개혁주의 생명신학 7대 실천운동> "정말로 성경만이 답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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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만이 답이다"라는 신앙운동에 관한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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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신대원 학우 여러분, 우리는 여러가지 큰 문제 앞에 서 있습니다. 대한민국 교회의 현실은 이제 목회를 시작해야 하는 우리에게 너무나 절망적입니다. 지난 3년여 간 코로나 기간 동안 만 여개의 교회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150만 정도의 성도가 교회를 떠났습니다. 지금은 대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상황인데도 성도 중 30% 정도는 계속 비대면 예배를 고수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개혁주의 생명신학은 ‘성경만이 답이다’라고 말합니다. 정말로 그렇습니까? 너무나 절망적인 현실인데, 거기다가 미래조차 불투명한 상황인데도 정말 우리에겐 성경만이 답입니까? 오늘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6일 전쟁”에 대해 아십니까? 아마도 한번 정도는 들어보셨을 겁니다. ‘6일 전쟁’은 ‘제 3차 중동전쟁’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당시 이미 ‘1, 2차 중동전쟁’에서 패배한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없앨 기회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티란 해협’의 통치권을 두고 충돌하게 됩니다. 1967년 5월 이집트는 아카바 만을 봉쇄하고 이집트 연합군의 병력을 전진배치합니다. 이스라엘 선박의 통행을 전면 금지함으로써 무언의 선전포고를 한 것입니다.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서 세계의 대부분의 군사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패배를 기정사실화합니다. 왜냐하면 전력면에서 이스라엘군이 이집트 연합군을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집트 연합군은 이스라엘군보다 보병은 5배, 항공기와 전차는 3배 이상 많았습니다. 전력면에서 크게 앞선 이집트군은 지중해를 유대인의 피로 물들이겠다고 호언장담합니다. 이제 겨우 국가를 세운 이스라엘은 다시 한번 지도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스라엘 국민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고, 공동 묘지를 미리 파 두는 랍비들까지 있었습니다.
1967년 6월5일 새벽, 결국 ‘3차 중동전쟁’이 발발합니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이스라엘 공군이 먼저 이집트 연합군을 공습합니다. 이 3시간여의 공습으로 이집트 연합군은 항공기 400여대를 포함한 공군력의 80% 이상을 잃어버립니다. 이 공습에서 이스라엘 공군은 단지 26대의 비행기를 잃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공습 이후 전 세계에 더 놀라운 소식들이 속속들이 전해집니다. 이스라엘군이 전쟁 3일만에 동예루살렘을, 4일만에 웨스트뱅크와 시나이반도를, 6일만에 골란고원과 요단강 서안지구를 점령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결국 전쟁 발발 6일 만에 이집트 연합군은 전면 항복합니다. 이스라엘의 완전한 승리로 끝난 ‘3차 중동전쟁’의 결과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이집트 연합군의 전사자는 2만 여명이 넘은 반면, 이스라엘군의 전사자는 800여 명에 그쳤습니다. 또한 이집트 연합군의 무기 손실은 20억 불이 넘은 반면에 이스라엘군은 오히려 수많은 무기와 전리품들을 획득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스라엘의 영토는 전쟁 전과 비교하여 3배 이상 확장되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유대인들은 이천년 만에 예루살렘을 되찾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완벽한 승리로 끝난 ‘제 3차 중동전쟁’은 6일 만에 끝났다 하여 ‘6일 전쟁’이라고도 부릅니다.
6일만에 전쟁에서 승리하고 안식일을 지키게 된 이스라엘은 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였습니다. 보면서도 믿기 힘든 전쟁 결과에 모두 입을 모아 ‘하나님의 손’(God’s hands)이 개입하셨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군의 총사령관 모세 다얀(Moshe Dayan) 장군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세속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통곡의 벽을 찾은 그는 전통대로 메모를 적어 벽돌에 끼워 넣었습니다. 그가 자리를 떠나자 한 기자가 메모를 빼어 무엇이 적혀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거기엔 시편 118편 23절이 적혀있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시 118:23)
이스라엘군을 지휘한 그도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신 것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전쟁이 시작된 후 이스라엘 전역에는 아모스 9장 14-15절이 계속 낭독되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을 적은 종이가 모든 이스라엘 군인들의 상의 주머니에 들어 있었습니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 9:14-15)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아무런 답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유일한 답이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성경에서 수도 없이 ‘6일 전쟁’과 같은 사건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그 중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이 되는 ‘메롬 전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대로 패해서는 안 되는 전쟁이었습니다. 만약 이 전쟁에서 패하면 이스라엘은 종족 자체가 사라지게 되며, 길갈 진영에 남겨둔 모든 가족들은 가나안 족속의 노예가 됩니다. 이렇게도 절박한 상황인데도 정작 이스라엘의 현실은 너무나도 절망적입니다. 4절과 5절입니다.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백성이 많아 해변의 수많은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이 왕들이 모두 모여 나아와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메롬 물 가에 함께 진 쳤더라”(수 11:4–5)
이렇게 엄청난 군대가 모인 것은 가나안 북쪽 왕들의 위기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여리고와 아이가 정복당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한 배신자 기브온을 벌하기 위해 모였던 가나안 중남부 왕들의 전멸 소식도 들었습니다. 심지어 얼마 전 해와 달이 멈춘 사건도 기브온 전투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을 그냥 이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북쪽 왕들은 서로 연합하여 모든 군대를 소집합니다. 이렇게 소집된 군대의 보병은 바닷가의 모레처럼 많았고, 말과 병거도 셀 수 없을 정도로(새번역) 많았습니다. 그들은 메롬 물가에 모여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이스라엘을 멸절시키기로 다짐합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스라엘의 현실은 어땠습니까? 우리는 이미 민수기를 통해 이스라엘 군대의 규모를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이십 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 만한 모든 자는 정확하게 “육십만 천칠백삼십 명”(민 26:51)입니다. 물론 이는 적지 않은 숫자이지만 바닷가의 모래같은 적군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더군다나 가나안 군대가 가진 수도 없이 많은 병거가 이스라엘에게는 한 대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현실은 너무나도 절망적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합니다. 이스라엘 진영에 삽시간에 두려움이 퍼집니다. 믿음의 지도자 여호수아조차도 이 막막한 현실 앞에선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도대체 이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누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한 마디로 답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은 너무나 간단하게 답을 제시하십니다. 6절입니다.
6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넘겨 주어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사르라 하시니라(수 11:6)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복잡하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병력을 어떻게 모으고 어떤 전략과 전술을 사용하여 승리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내일 이맘 때에 가나안 군대들을 넘겨주어 몰살당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병거를 불사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나 됩니까? 우리나라 속담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계란으로 바위를 치라고 명령하시는 겁니다. 웃어야 할까요? 아니면 울어야 할까요? 아니면 하나님께 따져야 할까요? 도대체 이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이 황당한 말씀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묵묵히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호수아는 이미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반드시 승리를 주십니다.

개혁주의 생명신학은 ‘5대 솔라’를 계승합니다. ‘5개 솔라’의 첫 번째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입니다. 개혁주의 생명신학은 자신과 교회와 세상을 말씀의 빛에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릇된 것은 바로잡고 올바른 것은 계승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단순히 성경을 읽는 시간을 늘리자는 구호가 아닙니다. 말씀을 읽기 전에 성령의 조명하심을 구하고, 엄위하고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서는 것을 말합니다. 설립자 목사님은 한 시간 주석을 보려면 우선 두시간 성경을 읽고, 세시간을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말씀과 기도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현재 한국 교회는 거대한 문제 앞에 서 있습니다. 2년여의 코로나 기간 동안 만여개의 교회가 문을 닫았고, 백 오십만명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심지어 비대면 예배가 있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않겠다는 성도들이 30%를 차지한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코로나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과 다시 일어나는 이단 등 당면한 문제가 한 두개가 아입니다. 진퇴양난의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대한민국 교회를 거대한 연합군 에워싸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이 지혜롭고, 재빠르고, 강해서 ‘6일 전쟁’에서 승리했습니까? 여호수아가 무예와 전략과 전술이 출중하여 가나안 연합군을 이겼습니까? 아닙니다. 두 전쟁 모두 승리의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연합군이 몇 개의 나라가 모였건, 몇 개의 족속이 뭉쳤건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의 힘은 정말 보잘 것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방법론적인 해결책들을 제시합니다. 집나간 아이들을 위해서 문화 컨텐츠를 만들고, 교회를 세분화시키고, 이런 것들보다 앞서 선행되어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개혁주의 생명신학이 말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만이 답입니까? 성경만이 답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믿는 자들, 다시 말해 성경을 믿는 자들과 함께 일하십니다. 그 숫자는 많이도 필요 없습니다. 나이가 어릴 필요도 없습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특정 성별일 필요도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는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성경만이 우리의 유일한 표중임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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